[창세기] 31. 인류 최초로 피해자에게 꽃뱀 누명을 씌운 책도 성경인 듯(아마도)

야곱이 제일 사랑했던 11번째 아들 요셉은 파라오의 경호대장 보디발에게 팔린다.

요셉은 천부적으로 숫자에 탁월했던 모양이다. 일을 워낙 잘 하니까 보디발이 식단 빼고는 집안 살림을 다 맡겨버렸다.

그 와중에 요셉은 젊고 잘 생긴 남자라, 보디발의 아내가 계속 유혹했다고 한다. 요셉은 ‘주인님께서 마님만 빼고 집안 대소사를 다 저한테 맡겼는데, 제가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 그건 하나님한테 죄를 짓는 거다‘ 라며 피해다녔다.

하루는 그 아내가 옷자락까지 붙들고 늘어지며 자자고 매달리는 통에, 잡힌 옷을 남겨두고 집 밖으로 도망친다.

…?

저쪽이 아쉬워하는 입장이니 그 좋은 머리 달고 도망치지 말고 문 앞에서 그 잘난 말빨써서 딜을 치지 그랬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온다.

요셉이 도망치자 여자가 하인들을 불렀고, 하인들이 달려오자, ‘남편은 우릴 웃음거리로 만드려고 이 히브리 노예놈을 사왔구나. 이놈이 나를 덮치려 했다, 그러나 내가 큰 소리를 지르자 옷도 못 주워입고 도망쳤다‘고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또한 나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도 똑같이 말한다.

그래서 요셉은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감.

화가들이 욕망 발싸하기 좋은 소재들이 성경에 우글우글
성스러운 성화 그린다는 핑계로,
벗은 여자 실컷 그릴 수 있는 성경 개꿀인 부분이었나 봄
거의 예수님 닮음

음 뭐 옛날 일이니 잘은 모르겠다만 아무리 봐도 여자 쪽 진술에 더 신빙성이 느껴지는데, 이걸 2000년 동안 아무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가?

적어도 저 과정에서 여자가 소리를 질러 하인들이 다 들을 정도였던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보통 자기가 유혹하려다 실패하면, 덜컥 겁부터 먹고 누가 봤을세라 안절부절하다가 나중에 꼼수를 고안해내지 않나?

요셉이 도망치자 뒤에 남은 여자가 ‘혹시 남편한테 이르면 어떡하지?‘ 걱정하다가 ‘당한 척 하자!‘고 결정한 뒤, ‘그럼 증언이 필요!‘ 이렇게 번개같이 판단해서 소리를 지른 뒤, 다시 하인들을 불러 알리바이를 만들어 둔다고? ㅋㅋ 애초에 높은 귀족의 증언에 하인들 진술이 꼭 필요했을까?

게다가 요셉은 강간 피해를 피해 굳이 집밖으로까지 한 방에 도망친다고? 옷을 잡히면 뭐 대충 ‘여주인께서 부르신다!‘ 등등으로 다른 하인들 듣게 소리라도 질러보지 그랬음?

마님, 이러시면 돌쇠 소리 지를 거여유!

아무리 상황을 그려봐도, 요셉이 지 스스로 벗고 덤볐다가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옷도 미처 못 챙기고 꽁지 빠지게 런 했다는 여자의 진술 쪽이 시나리오상 훨씬 더 그럴 듯하지 않냐는 거임.

그렇게 옷 남기고 쿨하게 집 밖으로 걸어나가실 때가 아님

남편의 아들이 범해도 찍소리도 못하는 지네 민족 여자들만 봐와서, 의외로 여권이 좀 있었다는 이집트 여자들을 잘못 판단한 거 아님? 혹시 집 안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우쭐해서 눈에 뵈는 게 없던 거 아니었음?

누이 디나랑 섹스한 뒤 바로 그 날로 청혼하러 온 군주 세겜은 강간 가해자라고 바로 확신했으면서, 이건 요셉이 가엾게 일방적으로 유혹당한 거라고 또 어떻게 확신해서 성경은 또 이렇게 단호하게 써갈겨 놓은 거임?

뭐 나도 뇌피셜이니 다 집어치우고 성경 말이 다 맞다고 치자.

그저 요셉은 여자가 잡은 옷도 도로 못 빼앗을 정도로 힘도 약하고, 당장의 강간 피해를 피해 집 밖으로까지 도망쳐서 보디발이 잡으러 올 때까지 숨어 있던 거 말곤 아무 방법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도 허술했던 걸로 정리하겠음ㅇㅇ

이제 모두 해피해졌지요?

아이고 나는 그래 저걸 도로 못 빼앗겠네

영문 아티클 좀 뒤져보니, 여자도 원해놓고 나중에 강간 피해를 꾸며내어 무고한 남자를 고발한다는 신화, 이른 바 꽃뱀 신화는 성경의 보디발 에피소드 때부터 유구하다는 글도 있었음 ㅋㅋㅋ

그나마 이 파트를 영 수상쩍어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어왔긴 한가 봄.

아무튼 그래서 감옥에 간 요셉은 또 얼마나 살살거렸는지, 간수 눈에 들어 그 안에서 잘 산다.

워낙 빠릿빠릿하니 간수는 일을 다 맡겨놓고 간섭없이 편히 지낸 듯. 아마 세상의 모든 교수들은 요셉 같은 죄수, 아니 대학원생을 바라고 있겠지…

덧) 이 글을 요셉을 의심하는 입장에서 쓴 이유:

피해자를 의심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말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음. 빈 행간을 최대한 이용해 만들어낸 억지 시나리오에 대해 느끼는 당황스러움, 그게 바로 위력 성폭력 피해자를 툭하면 꽃뱀 취급하곤 하는, 지금 현재도 흔하게 벌어지는 상황들에 대해 피해자들이 겪는 감각일 것임. 역지사지 한 번 해봤다 여겨주면 좋겠음.

남자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 특히 권력 관계가 뚜렷한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러함. 만약 요셉이 정말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생각한다면, 위력에 의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호소를 의심하기 전에 요셉을 한 번 떠올려주길 바람. 요셉은 2000년 동안 옹호라도 받았지 ㅋㅋㅋ

댓글 13개

  1.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도 못해본 관점이어서 너무 신선하고 재밌었어요ㅠㅠ
    보디발의 아내님 연대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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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래도 어딜가든 대빵(이스라엘, 보디발, 파라오)의 귀여움을 받아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능력이 있음.
    근데 보디발이라는 이름 되게 자주 본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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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티팔에서 나온 포티파리즘이란 단어가 있는데, 성폭력 누명을 뒤집어 쓴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라고 합니다. 진짜 누명을 쓴 피해자는 요셉일지 보디발의 아내일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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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재밌고 신선한 관점의 글을 쓰신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번 화는 특히 예리하고 완전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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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번 편도 우당탕탕 구성경 친구들 대소동 같은건줄 알았는데 이번에 진지한 주제가 담겨 있어서 놀랐네요.
    그 때 당시 사법 절차가 전문적이였다면 이 사건의 결말이 조금이라도 명확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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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귀족의 고발이라면 노예는 진짜로 별로 항변할 방법이 없었을 거긴 합니다. 어떤 점에선 그것 자체로 요셉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아무도 모르는 일을, 철저하게 요셉 입장을 확신하고 쓴 성경이 너무 얄미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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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 덧붙이신 부분에 요셉은 2000년동안 옹호라도 받았지 <- 이 문장이 너무…너무 공감가네요. 후에 나올 일이지만 ㅇㄹㄱㅅ(불신자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초성만 씁니다)에서 저지른 일을 그저 영광과 영예로 치부하는 성경이라… ㅇㄹㄱㅅ은 세겜처럼 복수한다는 명분자체도 없고요.

    그림들 보니 화가들 다말에 이어서 엄청 신났네요 다말은 가슴까지만 그리면서 체면차리더니ㅡㅡ… 그 시대 화가들 썸띵 엑조틱한 이교도 여자+꽃뱀+나쁜년 삼단 방패로 나체화 그리며 신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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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줄레이카는 자신이 2000년 넘게 벗겨진 그림으로 인류에게 조롱당하고 희롱당할 줄 알았을까요; 이른바 공인된 음녀 착즙하는 화가 새끼들도 다 한심하고 꼴뵈기 싫고 뭐 그렇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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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 사건은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서도 나오는데 내용이 더 자세합니다. 쿠란이 구약보다 훨씬 나중에 씌여진 것이기에 그 사이에 살이 덧붙여진 것이겠지요. 쿠란에서는 요셉의 옷이 찢겨졌다고 나오는데 요셉이 보디발(쿠란에서는 아지즈)에게 옷의 앞쪽이 찢어졌으면 요셉이 강간을 시도한 것이고, 옷의 뒷쪽이 찢겨졌으면 부인이 유혹한 것이니 이걸로 판단해 달라고 했고, 뒷부분이 찢겨진 것이 확인되어 보디발이 용서한 것으로 씌여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범죄는 단순히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형 범죄의 양상을 띠기 때문에 요셉이 강간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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