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 도둑놈 취급하는 사장을 논리로 처바른 썰 (진짜 도둑질했다는 건 안 중요)

창조적 유전술사 야곱이 양떼를 대거 차지하자, 라반과 그 아들들이 ‘하 저 도둑새끼 보게?‘ 상태가 된다.

위험과 함께 숨쉬는 타짜 야곱이 그 일촉즉발의 위험을 눈치 못 챌 리 없다. 레아와 라헬을 몰래 들판으로 불러내 탈주 계획을 말한다.

드디어 이 짤을 쓸 때가 온 야곱

“솔직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음? 근데 장인이 열 번이나 말 바꾼 거 알지? 얼룩이만 가져가랬다, 줄무늬만 가져가랬다…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도와줘서 내 몫이 계속 불어나긴 했는데… 오죽하면 내가 꿈에서 가축 섹스하는 것까지 보겠음? 암놈에 올라탄 숫놈들이 다 얼룩이, 줄무늬, 점박이더라고ㅋㅋㅋ 엌ㅋㅋ얼마나 간절했으면ㅋㅋㅋ 꿈에서 천사가 그거 보여주면서 ‘라반이 한 짓을 하나님이 다 알고 작업 ‘ 이라고 함 ㅋㅋ 아 아무튼 지금까지 하나님 덕에 목숨은 부지했긴 했는데, 이젠 진짜 한계인지 도망치라고 하심.”

그러자 레아와 라헬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딸 팔아먹고 심지어 딸네한테 갈 재산까지 빼돌리는 거 보니 애초에 그 양반이 딸자식은 가족 취급도 안 해줬던 거임. 마 앞으로 더 받아낼 것도 없고, 지금 우리가 가진 건 다 정정당당히 일해서 번 거니까 이제 고마 시가집으로 가입시다!”

친자매인 레아와 라헬이 오랫동안 경쟁관계에 놓여 마음 고생하면서, 한편으론 이런 팔자로 만든 친부를 계속 원망하고 있었음이 이 대사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재산 증식에 눈 먼 아버지가 고작 무료 일꾼이 탐나 자신들을 이용하고, 심지어 사위에게 돌아갈 몫(결국 딸에게도 갈 재산인데)까지 아까워하며 여러 번 말 바꾸던 행태 때문에 친부에게 개환멸이 난 듯 하다.

아니, 딸들 편하라고 재산 좀 물려주는 게 시x 그렇게 아깝고 싫을 일이야?‘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손절각 보인다고 단박에 친부에게 욕박는 레아와 라헬이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 부모라도 자식을 착취해먹기만 한다 싶으면 바로 손절쳐야 한다는 교훈을 현대인에게 남기고 있는 중이시니까 새겨 듣자.

아 유익한(?) 구약.

그래서 야곱은 바로 아내들을 낙타에 태우고, 가축과 재산들과 종들까지 다 끌고 튄다.

“꼭 가져가야 하는 것부터 싣고 불필요한 건 그냥 버려!”
이렇게 야곱만 남는데… (아님)

이때 라헬은 라반이 양털 깎으러 집을 비운 사이, 라반네 집안의 수호상인 ‘드라빔‘이란 것까지 훔쳐간다.

영어 성경인 킹제임스본이나 뉴 리빙성서본에서는 드라빔이란 말은 없고 그냥 images, 또는 household idols라고만 되어 있다.

그래서 히브리어본을 보니 테라핌 תְּרָפִים 이라고 되어 있음. 남성 복수형 명사인데, 단수형은 따로 없고 이 단어를 단수로도 쓸 수 있는 듯. 즉 이 단어 역시 엘로힘처럼, 장엄복수형으로 쓰는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추측이 맞다면, ‘신이 여럿이라서 복수형인 게 아니라, 그저 탁월해서 복수로 쓰는 것뿐인 신‘이 여럿인 거임. 수없이 많은 집안들의 하찮은 우상신 테라핌조차 엘로힘처럼 탁월해서 복수인 거임 ㅋㅋㅋ

아무튼 뜻은 ‘고치다, 치료하다‘라는 어근에서 온 ‘치료사‘ 혹은 ‘집안수호상‘ 혹은 ‘조상신상‘이다. 영어 테라피 theraphy의 어원인 건가.

이 테라핌이란 것은 고대 셈족의 문화인 듯 하다. 가문의 수호신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조상 자체를 신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보기도 하는 듯. 강령술에 썼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지역 미신의 총합임.

셈족의 테라핌들은 이렇게 생겼음

아니 근데 라헬은 이걸 왜 훔쳐갔지; 자기 친부를 아주 그냥 조상이고 근본이고 아무 것도 없는 놈으로 만들어서는 ‘어디 한 번 X돼 보라‘는 건가 ㅋㅋㅋㅋ

이렇게 야곱 가족이 소리소문없이 퇴갤한 것을 3일 만에 깨달은 라반은, 패밀리들 죄다 몰고 일주일을 쫓아와 그이어 길르앗 산에서 따라잡는다.

잡자마자 바로 죽여버릴 생각이었나 본데, 그 전날 밤 꿈에서 야훼가 나와서 ‘야곱한테 시시비비 털지 말라‘고 했던 게 영 찜찜했는지 우선 대화를 시도한다.

근데 대화 내용에서 벌써 라반의 성격이 너무 드러남 ㅋㅋㅋ 상당히 협박조인데, 번역이 하도 점잖게 되어 있어서 느낌이 전혀 안 살기에 조금 연기력 토핑해 봄.

“아이고~ 우리 사위가 우째 이러셨을까? 나 몰래 입 싹 닫고 남의 딸들을 인질 잡아가듯 끌고 가시고. 그래, 근데 왜 나를 속이고 도망쳐야 됐을까? 당당하게 떠나겠다, 그 말을 왜 못하고? 내가 북치고 피리불고 환송회도 거하게 해줬을 껀디? 나한테 딸래미하고 손주들하고 작별 인사할 기회도 안 주고, 왜 이렇게 어리석게 구셨을까그래. 내가 심히 서운해서 그냥 자네 만나자마자 뚝배기를 조사버릴라다, 간밤에 꿈이 쪼까 껄끄러워 가지고… 아무튼 뭐, 자네도 오랜만에 친아버지 뵙고 싶었을테니 그건 내가 다~ 이해를 해. 근데,”

라반은 개정색한다.

“…넘으 집 조상신은 왜 훔쳐갔을까?”

라헬이 테라핌을 훔친 줄 모르는 야곱은 이런 라반의 태도 앞에서도 침착하게 설명한다.

“장인 어른이 따님들을 못 데려가게 하실까봐 겁나서 조용히 나온 것 뿐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장인 어른네 조상신을 가져간 인간이 발견되면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다들 보는 데서 한 번 뒤져 보시죠. 혹시라도 진짜 나오면 가져가세요.”

의심나면 뒤져 보시죠!
내가 못 뒤질 줄 알고?

라반이 야곱네 텐트를 험악한 기세로 뒤지기 시작할때, 라헬은 낙타에 탄 채 조상신을 깔고 앉아 있었음ㅋㅋㅋㅋ (아니 ㅋㅋㅋ 아버지네 조상을 너무 함부로 취급하고 있잖아ㅋㅋㅋ)

그리고는 아버지한테는 ‘생리 중이라서 못 일어난다‘며 양해를 구한다.

ㄴㄴ 못 일어남. 아버지 ㅈㅅ

결국 여기저기 다 이잡듯 뒤졌으나 라반은 테라핌을 못 찾고, 끌고 온 형제들한테까지 머쓱해지게 되었다. 라반에게서 뻘쭘해 하는 바로 그 기색이 보일 때!

끌고 온 형제들이 기다리다 못해 ‘라반이가 뭘 오해한 거 아닌가?‘ 라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이때! 승부사라면 세게 치고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기회를 눈보다 이빨이 빠른 가나안의 타짜 야곱이 놓칠 리 없다.

아니, 진심!

“저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불길처럼 쫓아오신 겁니까? 다 찾아보셨으니 말해 보시죠. 뭐 하나라도 외삼촌 물건이 있었습니까? 그럼 어디 사람들 다 보게 꺼내놔 보시죠? 제가 외삼촌 밑에서 일한 게 20년이거든요? 그 동안 양과 염소가 유산한 적도 없고요, 제가 잡아먹은 적도 없어요. 들짐승에게 죽은 놈이 있으면 제 걸로 벌충해놨습니다. 어쩌다 도둑이라도 맞으면 저더러 그거 다 물어내게 하셨죠? 저요,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제대로 잠도 못자면서 20년을 살았거든요? 그 상태로 결혼한다고 공짜로 14년, 그 후로 6년이나 더 일했죠? 근데 6년치 품삯 좀 받겠다는데, 그마저도 외삼촌이 품삯 줄이려고 말을 열 번이나 바꾸셨거든요? 진짜 우리 하나님 빽만 없었으면 외삼촌은 저를 20년이나 부려먹고서는 퇴직금 한 푼 안 쥐어주고 빈손으로 보내셨을 걸요? 어젯밤 외삼촌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거, 그거 괜한 거 아닙니다.”

야곱이 논리로 조목조목 발라버리자, 강약약강 라반은 형제들 보기가 너무 민망했는지 대번에 꼬랑지를 착 내린다.

“아이고 사위도 참, 여기 다 내 딸이기도 하고 내 손자이기도 하고 내 양이기도 하고, 보이는 것들 모두 다 내 가족이기도 하고 내 소유였기도 했는데, 내가 뭐 내 딸들이나 내 손자들에게 어떻게 해코지라도 하려 그런 거겠어? 그냥 우리 이쯤에서, 자네가 내 딸들 시집살이 시키지 말고, 내 딸 말고 다른 아내를 더 얻지도 말고(니 재산이 최소 내 외손자한테 간다는 보장은 있어야겠다는 뜻 같음), 그리고 우리 서로의 땅 침범하지 말자고 자네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아가지고 약속이나 하자 그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이렇게 약속을 하자 이거야!

그래서 분위기는 갑자기 돌 쌓아놓고 가축 잡아서 제사 지내고, 쫓기던 놈들 쫓아오던 놈들 다 같이 모여 젯밥 나눠먹고 하룻밤 자고 평화롭게 작별 인사하고 헤어지게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이 산이 길르앗(길아드)이었는데, 이후로 라반은 이를 ‘증거의 돌무더기‘란 뜻의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예가르 사하두타)라고 짓고, 야곱은 같은 뜻의 히브리어로 ‘갈르엣(갈레드)‘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근데 원래 이름인 길르앗이나 이후의 이름은 갈르엣이나 둘 다 ‘증거의 돌 무더기‘란 뜻임.

이 파트의 작가가 갈르엣 이전의 이름은 확실하게 몰라서, 그냥 당시에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리던 걸로 대충 쓰신 건 아닌지?

댓글 17개

  1. 야훼 신상도 아니고 꼴랑 가정집 미신 신상 훔친거면 이거 한국식으론 애비 엿먹으라고 제기에 위패(+족보)들고 튄거 아닐까요?ㄷㄷㄷ 하긴 저라도 자매랑 내가 한 남자 두고 캣파이트 뜨게 한 애비는 개개비만도 못하니 엿 좀 먹으라고 이럴 것 같네요. 개개비는 귀엽기라도 하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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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다. 자식을 가축 취급하는 아비는 아비도 아닐 뿐더러 엿먹어도 싸다! 아니 왜 라반은 집에 우상이 있지? 게다가 왜 그걸 저렇게 소중히 여기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의문이 풀립니다. 야훼를 믿는다고 해도 주변지역의 종교 트렌드에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던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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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계속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편도 필력이 찰지시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찰떡같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하나 짚어내 언급하기도 어렵네요ㅠㅠㅋㅋ 정말 유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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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녕하세요 글 정말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ㅎㅎ
    드라빔은 집안 재산을 물려줄 후계자에게 함께 물려주는 물품이었습니다. 즉 라헬이 훔쳐온건 라반의 재산을 이어받을 후계자의 증표고, 드라빔을 못찾은 외삼촌이 서로 영역을 지키자고 제단을 쌓은건 드라빔을갖고 재산을 물려받겠다고 찾아오려는 미래의 일을 막은 거라는 해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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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드라빔과 같은 우상(유일신 유대교 관점에서)을 생리중인 여성 엉덩이에 갖다놓은 것을 두고 ‘조각품에 불과한 우상이 이런 불경한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해학적으로 풍자한 것이라는 해석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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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뭔가 진짜 잘 갖다 붙였네요. 해석이라기보다 감상 같습니다 ㅋㅋ ‘아니 성상을 깔아뭉개는 상황에서도 아무 힘도 못 쓰네’ 같은 개인적 감상요ㅋㅋ 우상이 쓸모없음을 강조하려면 라헬이나 야곱이 몰래 훔쳐갈 게 아니라 외삼촌에 대한 복수로 강에 던지던가 불에 태운다는 내용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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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강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는 것보다는 [생리혈]에 닿는 것이 가장 몸서리치게 치욕적이라고 생각한 고대인(남자들)의 사고방식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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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드라빔은 가족신상이고 라반 집안을 지켜주고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라반은 여기고 있습니다.

        1) 그 복을 빼돌려 가지려는 것이었다면 깔고 앉더라고 끝까지 킵해야 했을 겁니다.

        2) 드라빔 효과는 믿지 않지만 그걸 믿는 라반을 엿먹이고 싶은 거라면, 훔쳐서 바로 불에 태우거나 강물에 버리면 됩니다.

        3) 드라빔에게 아무 힘이 없음을 조롱하고 모욕하려는 의도였다면 애초에 깔고 앉고 조롱한 뒤 수색 당하기 전에 없애면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숨겨가지고 가려했고, 소지품 검사할 때가 되니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할 곳에 기지를 발휘해 숨겼음이 너무 명확합니다. 그냥 드라빔 효과를 인정하는 것처럼 서술해버렸다는 것이 가장 깔끔한 설명입니다.

        그 일화를 보며 ‘드라빔이란 신이 힘이 없네~’라고 생각하는 건 그저 사건을 보고 추가적으로 느끼는 감상인 것 같다고 말씀드린 건 이런 뜻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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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위의 얍님의 [ 드라빔 소유 = 후계자 증표 = 재산 상속 ] 논리를 읽고 생각해보니 님의 “드라빔효과 인정”의 설명이 더 잘 이해되네요. 그리고 사건을 보고 추가적으로 느끼는 감상이란 말이 맞아요. 신자들은, 고대인들을 포함해서, 야훼 = 유일신, 나머지 = 가짜우상의 프레임을 일단 쓰고 이 이야기를 읽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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