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 사라가 죽고 찌그러져 있던 이삭에게 개쎈 리브가가 온다

혹시 ‘나홀’ 기억하는가?

아브라함에게는 하란나홀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하란은 일찍 죽고 나홀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우르에 남았었다.

나홀은 자기 조카 밀가(하란의 딸)와 결혼해서 우스, 부스, 그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 이렇게 8형제를 낳았다.

또 나홀은 르우마라는 첩 사이에서도 데바, 가함, 다하스, 마아가, 이렇게 4명의 자식을 얻는다. 메소포타미아에 남겨둔 나홀은 이렇게 번성하고 있었다.

다시 가나안 땅의 나그네인 아브라함네로 돌아와 보자.

시간은 흘러 흘러,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헤브론에서 죽는다.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울다가, 그 동네 원주민 격인 히타이트(헷) 사람들에게서 사라를 안장할 동굴을 사려고 한다.

히타이트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높은 사람 취급을 하며 극진하게 대우한다. 아무래도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맞다이 뜨는 군벌급 부자라서 그런 것 같음.

아브라함은 소할의 아들 에프론이라는 사람에게서, 막벨라 동굴이 딸린 밭을 사려고 한다. 에프론은 돈 안 받고 그냥 주겠다는데 아브라함은 기어이 은 400 세겔을 치르고 사라를 안장한다.

가족 묘지 개념

또 시간은 흘러 흘러 아브라함도 늙고, 이삭도 결혼할 때가 됐다.

아브라함은 충실한 늙은 종을 불러, 가나안 여자는 안 된다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고 있는 자기 친족 중에서 며느리감을 찾아오라고 시킨다.

또한 지금 이 가나안은 우리 땅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삭이 여자네 집으로 장가를 가서도 안 되고, 반드시 여자가 여기로 시집을 와야 한다고 함 ㅋㅋ

가나안 땅의 나그네로 덕 보고 사는 입장이면서, 음흉하게 자기 자손에게 땅을 가로채 넘길 생각으로 ‘우리 혈족’만 찾아대는 순혈주의 클라스. 중동의 기나긴 부동산 전쟁의 첫 설계가 이렇게 들어간다.

게다가 가나안 사람을 굳이 싫어한다고 해봤자, 아브라함 또한 앞으로 자기 일가를 통해 민족을 일구게 될 예정일 뿐, 아직은 어떤 특정한 고유 단일 민족에 속해있다고 보기 힘듬.

본인 자체의 정체성이 단일 민족이 아닐 거면서, 그 와중에 다른 민족을 거부한다는 배타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브라함 머리 속에 씨족 개념까지는 확실히 있어서인 듯 하다.

즉 ‘히브리인’을 특정한 단일 민족이라 보기 힘들 때라는 것임. 아브라함도 그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선 바다의 모래처럼 흔하디 흔한 셈족일 뿐이다.

조금 더 나가자면, ‘히브리인’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로,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아브라함을 지칭하며 처음 언급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원래 가나안 원주민들이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부터 온 아브라함 같은 사람들을 통칭해서 ‘헤브루인’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배타적 단일 민족 개념의 ‘히브리인’이 되려면, 적어도 아브라함 사후, 후손들이 같은 조상을 섬기고 같은 신화를 공유할 때쯤부터라고 봐야 함.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지금과 같은 개념의 히브리 ‘민족’을 찾았다기보다, 그냥 고향에 있는 자기 혈족을 찾은 것 뿐임.

tmi를 더 치자면, 아브라함은 수메르 지역의 셈어 계통의 말을 썼을 텐데, 이것과 가나안 지역의 방언과 섞이면서 히브리어가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무튼 늙은 종은 아브라함의 두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혈족의 여자를 찾아오겠다고 맹세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thigh’, 즉 허벅지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부분이다. 히브리어로 ‘야레크’라고 하는데, ‘부드럽다’는 어원에서 왔으며 넓적다리, 환도뼈, 대퇴골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허벅지가 아니다.

야레크라는 단어는 ‘남성의 꺼츠’를 완곡하게 돌려 말할 때도 쓰는 단어인데, 창세기 46장에서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창세기 46: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여기서 야곱의 ‘‘이라는 단어에 ‘야레크‘를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허벅지에 손을 넣고 맹세한다는 관습은, 사실은 꺼츠그립을 말한다. 그리고 이 ‘맹세의 꺼츠그립’은 원래 이집트의 풍습이다.

볼테르의 책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여자는 내걸 꺼츠가 없기 때문에 신뢰와 맹세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역시 내정자 있는 공채 같은 풍습이다.

아무튼 종은 낙타 열 마리에 선물도 잔뜩 싣고, 나홀이 자리잡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람-나하라임‘이라는 곳으로 간다.

원래 나홀은 우르에 남았었는데, 나중에 올라갔나 봄.

그 동네 우물가에 도착한 종은 ‘성 안의 사람들이 물 길러 나올텐데, 제게 물 떠다 주는 처녀가 있다면 그녀를 바로 신이 점지해 준 여자로 알겠다‘고 기도한다.

그때 두둥!

나홀과 밀가의 8번째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가 물 길러 나왔다.

제게 물 좀 떠 주십시오

그녀는 종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는 것은 물론, 마실 때 무거울까봐 항아리 아래도 받쳐주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몇 번이나 길어준다.

우물가에서 상냥하게 물 떠주고 신부가 되는 건 동서고금의 스토리

이에 종은 리브가가 나홀과 밀가의 손녀란 말을 듣고 금코걸이와 금팔찌 두 개를 채워준다.

코걸이일 것 같은데 후대의 기독교인들이 괜히 이교적이라 싫어서 일부러 귀걸이 쪽으로 해석했던 듯
안주인 마님이 되실 분이군요!

역시 낯선 손님에 대한 환대가 주요 테마였음.

이어서 브두엘네 집에 방문하여 신부값을 잔뜩 주고 결혼 허락까지 수월하게 받아 낸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종이 바로 다음 날 리브가를 데려가려고 하자, 리브가의 오빠와 엄마는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우니 열흘만 더 데리고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종과 가족들은 이 문제로 조금 옥신각신하다가 놀랍게도 ‘그럼 리브가에게 물어보고 결정하자‘라고 한다. 미혼 여성에게 의사 결정을 맡기다니 참 생소한 느낌임.

리브가는 ‘네, 따라가겠습니다.’하며 의사 표현 개확실하게 한다. 리브가는 개쎈 타입이 분명하다. 리브가의 가족도 아닌 나까지 쫌 서운함 ㅠㅠ

혹시 리브가는 아버지 브두엘이 꼴보기 싫었나..? 다시 읽어보니 리브가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 잡는 건 정말 오빠랑 엄마 뿐임ㅋㅋ

오빠와 엄마는 리브가에게 ‘너는 수천만의 어머니가 될 것이고, 네 자손은 적의 성을 차지할 것‘ 이라고 축복해 준다.

아브라함이나 리브가에게 하는 축복의 내용을 보면, ‘후손 번창, 부동산 부자‘ 같은 말이 일관되어 나타난다. 이는 미래의 예언이라기보다 일상적으로 누구에게나 하는 축복의 문구였을 거라 짐작된다. 즉 이들은 자손 번영과, 부동산 약탈(?)이 흔한 인사인 모양이다.

또한 ‘야훼 믿고 천국 가세요’ 같은 식의 말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내세 개념도 크게 없고, 오로지 현세와 번식에 관심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자기 유모까지 데리고, 리브가는 종과 함께 이삭한테로 온다. 유모가 있었던 걸 보면 브두엘도 잘 사는 집안이었던 듯.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이렇게나 충성스러운데, 이 종이 바로 그 ‘다마스쿠스 출신의 엘리에셀’인 듯 하다. 아브라함이 아직 자식이 없었을 때 환상 속에서 야훼를 보며, ‘자식도 없으니 내 유산은 다 엘리에셀이 가지게 될 것‘이라며 징징대던 바로 그 엘리에셀이다.

당시 이삭이 머물던 네게브에 도착한 리브가는 멀리서 이삭이 마중나오는 걸 보고 종에게 물어본다.

“저 분이 누구죠?”

“제 주인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다. ㅎ 뭔가 풋풋하고 귀여움.

역사상 첫 ‘유대 신부’가 되실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비어있던 어머니 사라의 천막으로 맞아들인다. 이건 안주인의 자리를 양도한다는 개념인가 보다.

재미있게도 ‘이삭은 리브가를 사랑했으며, 어머니 사라가 죽은 뒤에 위로를 얻었다‘는 문장이 나온다.

역시 이삭은 아버지가 겁나 무서웠던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 사라가 항상 암호랑이처럼 자기 곁에 붙어 있으며 아버지로부터 지켜줘야 안심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와 3일이나 떨어진 거리에 끌려가서 아버지 손에 죽을 뻔했으니…

리브가가 왔을 때 이삭은 자기 편이 생긴 느낌이라 정말 좋았던 것 같음.

덧) 이삭의 입장에서 보자면, 리브가는 작은 아버지(나홀)의 손녀이자 사촌 누나(밀가)의 손녀이다.

광고

댓글 14개

  1. 많은 종교인들이 성경을 원하는대로 해석해오다보니 점점 그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읽기가 힘들었는데, 늘 불신자님의 시각을 따라가다보면 역사 공부도 되고, 어느 정도 인물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서 좋습니다. 연휴동안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Liked by 1명

  2. 아, 혹시…

    “이삭의 입장에서 보자면, 리브가는 작은 아버지(하갈)의 손녀이자 사촌 누나(밀가)의 손녀이다.”

    여기서 이삭의 작은아버지는 하갈이 아니라 나홀이 아닌지요?

    이삭 입장에서 하갈은 작은어머니[庶母]가 더 옳을 듯합니다.

    Liked by 1명

    1. 작은 아버지(나홀)의 손녀이자, 사촌 누나(밀가)의 손녀입니다.

      하갈은 나홀을 쓰려건 중,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무심코 써버린 오타입니다 ㅋㅋ

      좋아요

  3. 컥 ㅋㅋㅋ 니 거시기에 걸고 맹세할게! 이런느낌인가요. 허벅지사이에 손넣었다고 할때도 뭐야 이상해..했는데 거시기에..음음..현대인은 힘듭니다 ㅋㅋ
    이래 보니 리브가 정말 쎈캐네요. 하긴 애들 상속권 개입할때도 보통아닌 느낌이긴 했어요. 이삭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하고 얌전한 느낌이었는데, 센 여자가 취향인가봐요 ㅋㅋ

    Liked by 1명

  4. 보통 내세에 대한 세계관은 안정된 정세에서 많이 나타나고 혼란기에는 현세에서 잘사는 법(솔직히 현실도 막장인데 내세까지 신경쓸 여유가 어디있겠습니까.)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던데,
    어쨌던 아직은 유목민이고 뭔가 딱 정착했다! 눌러 앉았다! 나라 세웠다! 이런 단계가 아니라 현실적인 내용 중심이었던게 아닐까요?

    Liked by 1명

  5. 보통 내세에 대한 세계관은 안정된 정세에서 많이 나타나고 혼란기에는 현세에서 잘사는 법(솔직히 현실도 막장인데 내세까지 신경쓸 여유가 어디있겠습니까.)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던데,
    어쨌던 아직은 유목민이고 뭔가 딱 정착했다! 눌러 앉았다! 나라 세웠다! 이런 단계가 아니라 현실적인 내용 중심이었던게 아닐까요?

    Liked by 1명

  6.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교리화된 해석 때문에 성서를 자연스럽게 보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구약성서의 역사성 문제로 생각하던 것인데, 제 생각에는 아브라함, 모세가 실제 역사로 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성서 외에 자료도 없구요ㅠ
    예전에 구약성서학 책에서는 사사기부터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던 것이 기억납니다(출처 : 김기흥 유일신 야훼)

    불신자님(?)은 어디부터 역사적인 기록으로 보시나요?~

    Liked by 1명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